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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2

나는 원래 자연에 완전 무지하다. 무식의 극치다. 어려선, 미안하지만, 수박도 쌀도, 나무에 열리는 줄 알았다. 생물 시간엔 매일 시만 썼다. 지금 뉴저지 사시는 생물쌤, 죄송합니다! 이리 동식물에 약하니, 책을 읽을 때도 자연 묘사 장면은 빛의 속도로 지나간다. 이런 차도녀, 차가운 도시의 여자 나를 자연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한 것이 아이슬란드다.   일단 인구 40만도 안 되는 이 나라에는 양이 10만 마리가량 있다. 사람 네 명당 양이 한 마리꼴이다. 무수히 많은 아이슬란드 농장들은 우리가 생각하듯 농사를 짓기보다는 양, 소, 말 등을 기른다. 따뜻할 때는 방목을 하고, 추워지면 먹일 풀을 매년 2~3번까지 수확하여 건초를 만든다. 지나가다 보이는 커다랗고 하얀 치즈 덩어리 같은 것들이 다 건초 더미다. 아이슬란드가 가장 푸르를 한여름에 갔기 때문에 볼 수 있었던, 초록색 풀밭과 산기슭에 하얀 양들이 점점이 박혀있는 모습은, 다녀와 내 꿈에 나올 정도로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또한 1000개가 넘는다는 아이슬란드의 폭포들은 각자 독특한 모습으로 빙하가 덮인 산꼭대기로부터 쏟아져 내렸다. 혼자 고고한 위엄을 드러내며 높은 데서 쏟아지는 폭포들, 빨려들 것 같은 거대하고 넓은 힘찬 폭포들도 아름다웠지만, 웅장한 한 폭포가 아니라 여러 개 작은 폭포들이 용암산을 흘러내리며 자아내는 멋진 심포니 같았던 폭포들은 더 기억에 남는다. 그 여러 개의 폭포와 이들이 모여 만들어낸 신비로운 옥색 빛 계곡물은, 바로 내가 살아가고 싶은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다.   이번 여행에서 또 하나 느낀 것은 검은색의 아름다움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보내며 왠지 겁나 싫어하게 되었던 검은 색, 이후 나의 최애 색깔은 파랑과 노랑이었다. 하지만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다이아몬드처럼 반짝이는 빙하 조각들로 덮인 검은 비치, 그리고 검은 라바 해안 위로 치솟아 있는 검은 빛 용암 절벽들은 너무 아름다워 가슴이 저려왔다. 이젠 모든 색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게 내 마음도 회복되어 있음을 알게 해 준 아이슬란드 여행이었다.     나의 달링 손주들이 사진 찍어 보내 달랬던 펭귄 대신, 펭귄을 닮은 귀여운 새 퍼핀들, 그 외에도 북극해의 각종 새, 물개, 백조들이 거기 살고 있었다. 특히, 낭만이 넘치다 못해 빨간 신호등이 하트 모양인 Akyureiri라는 마을에서 배를 타고 나가 만난 여섯 마리의 험프백 고래들. 더운 카리브해나, 적도 부근에 가서 짝을 짓고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몸무게가 평균 1.5톤, 길이는 3미터가량이나 되는 새끼 고래를 어미 고래는아무것도안 먹으며 6~10개월 동안 하루 400리터 정도의 젖을 먹여 기른다. 그리고 성장한 새끼를 데리고 다시 찬 물로 올라온 엄마 고래는 새끼 고래와 헤어져 각자의 삶을 산다고. 으앙, 왜 헤어지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고래들은 무리 지어 살기도 하지만 거의 혼자 산다는 말을 들으며, 홀로, 또 따로 사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7박 8일 투어를 마치고 레이캬비크로 돌아온 날 저녁은, 두 달 전 오픈한 아시안 식당에서 떡볶이와 장터국수를 먹은 것도 모자라, 백야로 환한 밤 10시 반 일몰을 즐긴 후, 아이슬란드 슈퍼에서 자주 볼 수 있던 불닭볶음면을 사와 밤참으로 먹으며,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랬다. 지구 같지 않은, 지구 상의 보물같이 아름다운 나라, 아이슬란드, 언젠가는 오로라를 만나러 한 번은 더 가게 될 것 같다!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아이슬란드 러브 나라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 슈퍼

2024-08-28

[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나의 북클럽에서 여행을 다닌 지 2년이다. 여행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는 회원들을 위한 자연을 통한 휴식의 시간이다. 매년 2회, 겨울·봄에는 따뜻한 곳으로, 여름·가을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문화를 맛볼 수 있는 곳을 간다. 7월 말, 얼음과 불의 나라 아이슬란드 여행을 9명이 9박 10일로 다녀왔다.     한여름이지만 우리 늦가을, 초겨울 날씨라는데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나, 우기라는데 방수 재킷과 방수 바지는 확실히 비를 막아줄까, 아침에 내리자마자 시작되는 투어 시간에 맞춰 비행기에서 총알같이 튀어나가야 하는데, 가방 사이즈와 무게에 엄격하기로 소문났다는 아이슬란드에어 짐은 어떻게 싸야 하나, 음식이 맛은 없고 엄청 비싸다는데, 등등 가기 전부터 많은 걱정과 불안이 앞섰던 여행이었다.     하지만, 역시 걱정은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 그 엄격하다던 아이슬란드에어는 사이즈와 무게가 초과한 가방들을 무료로 부쳐주었다. 공항이 아주 작아 짐 찾는데도 시간이 전혀 걸리지 않아, 투어 시작 장소인 레이캬비크의 버스터미널까지 여유 있게 도착했다. 그리고 이어 시작된 따뜻하고 유능한 가이드 요한과 시작된 7박 8일간의 링로드 투어는, 아이슬란드의 자연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치유를 안겨주었다.     대학원 후 컴퓨터 일을 하다, 아이슬란드 자연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가이드로 행복하게 사는 요한은 바이킹의 후예다. 앗, 이 젠틀한 요한이 바이킹 후예? 야만적이고 잔인한, 도끼를 든 해적의 후예? 하지만 할머니가 짜주신 15년 된 양털 스웨터를 아직도 소중히 입고 있는 요한의 설명을 통해, 해적으로 악명높은 바이킹들도 있었지만, 사실 대부분 바이킹은 농부였으며, 스칸디나비아 반도 인구가 늘어나며 살기 힘들어지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아이슬란드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다.     874년쯤부터 아이슬란드에 정식으로 거주하기 시작했다는 바이킹들은, 그 옛날부터 민주주의식으로 매년 의회를 열어 대화로 모든 문제를 해결했고, 그들의 의회는 다른 여러 나라 의회 시스템의 모델이 되었다고 한다. 첫 도착한 장소가 바로 그들이 의회로 모였던 싱벨리르 공원이었다. 북아메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이 만나는 곳으로, 매년 2cm씩 그 간격이 벌어지며 생긴 골짜기를 따라 걸으며 여행을 시작했다.     현재 아이슬란드 국민소득은 한국의 두 배로, 미국과 거의 비슷한 7만3000여 달러다.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였고, 어디서나 팁도 기대하지 않았다. 높은 36~42% 세금이지만, 무상 교육과 훌륭한 복지가 주어지는 이 나라는 루터교가 국민의 75~8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예쁜 빨간 지붕 교회가 언덕에 세워져 있는 마을들이 많다. 지진이나 쓰나미가 오면 높은 곳에 있는 교회로 올라가게 되어있다는 설명에, 교회의 피난처적인 의미도 느껴졌다.     음식도 염려와 달리 아주 맛있었다. 특히 대구는 피쉬앤칩이든, 굽거나 찐 스타일이든, 으깨서 스튜로 했든 모두 별미였다. 양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양 수프와 고기를 즐겼고, 양고기를 못 먹는 나도 양고기 맛 핫도그는 매운 겨자 소스를 뿌리니 맛있었다. 각종 야채나 해물 수프들도 미국처럼 짜지 않고 맛깔났다. 직접 구운 호밀 빵과 직접 만든 요구르트들이 있는 곳이 많았고, 음식 맛이 전반적으로 자극적이지 않고 부드러웠다.     아이슬란드의 자연이 건네준 힐링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칼럼에 계속하기로 한다. ([email protected]) 김선주 / NJ 케어플러스 심리치료사살며 생각하며 아이슬란드 러브 아이슬란드 러브 아이슬란드 자연 현재 아이슬란드

2024-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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